이어령 지음
생각의나무 / 2006.4.6
회사에서 이어령씨의 특강을 듣고,
그 분의 디지로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찌나 입담이 좋으신지 2시간 가까이 되는 강의시간 내내
계속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분의 특강 만큼이나 '디지로그' 책도 맛깔나는 책이었다.
물론 어떤 부분은 너무 작위적으로 예제들을 끼워맞춘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중간중간 사람들에게 '먹히는'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내 관심을 가장 끈 부분은 '시루떡 정보' 부분!
사람들에게 '시루'라는 내 닉네임을 소개하면,
가장 먼저하는 이야기가 '아~ 시루떡의 시루?'인데...
난 그동안 "'시루'라는 말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이라는 뜻도 있데요"라고
'시루떡'스러움을 부인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시루떡 정보' 전문가 '시루'에요"라고
이야기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웬 떡이냐!"의 정보 모델 - 시루떡의 정보 원리
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한국인들은 시루떡을 돌리는 것으로 온 동네에 정보를 알렸다. 디지털 정보는 컴퓨터 칩의 회로를 타고 오지만 시루떡 아날로그 정보는 꼬불꼬불한 논두렁길을 타고온다...
"이게 웬 떡이냐?"
시루떡 정보의 발신은 언제나 이렇게 놀라움과 궁금증을 동반한다..... - 본문 37p.
시간과 공간은 서로 떨어져 있어 따로따로이지만 한 집 한집 떡을 돌려 함께 떡을 나눠 먹는 것은 '따로 그러나 함께'라는 특이한 제3의 원리를 만들어 낸다.... - 본문 42p.손으로 고물을 만질 때의 촉감, 호박고치의 구수한 냄새, 이로 씹을 때의 너무 딱딱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저항, 눈으로 보이는 시루떡 켜가 그려내는 기막힌 미각의 지층(地層), 그리고 지열처럼 훈훈한 따사로운 온감, 시루떡에는 이처럼 멀티미디어의 다양한 디지털 정보와 겨룰 만한 오관의 즐거움과 행복이 들어있다... - 본문 43p.
진짜 정보는 은근함이 있다. 노골적으로 겉으로 노출되어 있는 정보는 이미 정보가치가 반감됨다. 정보는 은밀할수록, 애매성을 띨수록 그 효과가 커진다...
그것은 꼭 시루떡에 고물이 묻어있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정보이론으로 하자면 고물은 노이즈(잡음)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것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정보는 마찰이나 거부감 없이 수신자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갈 수 있다. - 본문 45p
난 이 시루떡 정보 비유 부분을 읽으면서
Daum 카페를 떠올렸다.
Daum 카페에 그 많은 값진 정보가 오랜 시간 동안 쌓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진짜 정보를 둘러싼 '떡고물'들이 많아서였던 것 아닐까?
그리고 마치 시루떡을 돌리러 마을을 돌아다니듯이
자신의 사이버 카페를 돌아다니던 Daum 카페 회원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Daum 카페에도 저자가 그리도 비판하던 '스팸성 정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카페를 사랑하는 회원들의 글이라기보다는
인터넷을 종횡무진하며 스팸을 뿌리고 다니는 악성 스패머들의 소행이다.
또 검색서비스 기획자 입장에서는
이런 '떡고물'들이 진짜 정보를 걸러내는데
애매하고 필터링 곤란한 정보들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이 깨끗하게 정리된 논문이나 뉴스기사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카페에서 와서 얻는 것을 보면 이 고물들 사이에서 뭔가를 건지는 것이
아직까지는 유의미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령씨가 '디지로그 선언'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날로그식 사고에만 빠져있던 기성세대에게
과거 뗏목을 갈아타고 '디지털 + 아날로그'가 어우러진 새로운 시대로 건너오라는 것이다.
얼마전에 읽은 '웹진화론'의 저자도 새로운 그의 책 마지막 장에서
'탈 기득권으로의 여행'을 논하면서 기성세대에게 변화를 촉구했다.
내가 속한 세대를 생각하면,
완전히 아날로그적이지도, 또 완전히 디지털적이지도 않은
그야말로 디지로그적인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부터도 기성세대와 디지털키드 세대 사이에서
디지로그적인 가교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책임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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